몇일째 엄마와 냉전중이다.
분명 이틀 전까지만 해도 "우리 딸이 있어서 행복해" 라고 말하던 엄마였는데,
오늘은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바쁘다며 작업실에서 밤을 샌다고 한다.
나는 괜히 전화해서 "작업실에서 밤새면 힘들지 않아?" 라고 말을 걸어보지만
"뭐 별로." 라는 대답에 머쓱해진 나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누가 그랬던가. 언뜻 보기에는 사랑을 받는쪽이 권력을 갖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랑을 받는쪽보다는 사랑을 주는쪽이 진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왜냐? 사랑을 받는 쪽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그 사랑을 거두는 순간 본인의 의자와는 상관없이 사랑을 잃게 된다.
힘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이 말에 깊이 동의한다. 내가 바로 사랑을 못주고 받기만 하는 수동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표현하는 애정만 받을줄 알지, 이런 상황에서는 몸이 굳어져 버린다.
애교? 진심을 담은 말? 이런 미묘한 감정의 꼬임은 어떤식으로 풀어내야 하는지 감도 잘 잡히지 않는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엄마가 먼저 화가 풀리기 전까지 이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이다.
K-장녀라는 말이 있다. 어쩌다 대한민국의 큰딸들을 대표하는 대명사까지 생겨버렸을까?
이 단어의 원래 뜻은 '장남들이 짊어지던 가족부양+전통적인 여성에대한 역할의 요구' 까지 맡아버린 장녀들을 뜻하던 말이다.
이것은 능력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성격에대한 평가로도 이어진다.
자고로 고리타분한 "장남" 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속은 따뜻하고 능력있는 남자가 생각나곤 한다.
k장녀들은 이런 장남들의 성격을 똑 닮았다.
하지만 장남들이 무뚝뚝하면 "남자답다"며 칭찬받지만, 장녀들이 무뚝뚝하면 "너는 여자애가 애교도 없고,,," 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장녀인 나도 이런 성격을 똑 빼닮았다. 그리고 "딸이되서 애교도 없다" 는 말 또한 많이 들어왔다.
표현하기 부끄러워 하고 애교없는 성격,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적은건 아니다.
그저 표현을 못할뿐이다. 억울하다.
억울한 상황을 예로 한번 들어보자. 나한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남동생이 연락 안한다고 서운해는 하시지만, 서운하다고 표현한 적은 한번도 없다.
반면에 나는 어떤가? 애교 없다고 혼나는건 대한민국 딸들밖에 없을거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있다.
사실 나는 밖에선 귀염둥이라는 것이다.
별명으로 "애빼시" 까지 들어봤을 정도로 ( 애교 빼면 시체) 밝은 성격에 귀여운 이미지로 내가 장녀라는걸 알면 다들 안믿을 때도 있다.
근데 왜 집에만 오면 동굴사운드의 목소리에 무뚝뚝한 인간이 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두 가지중 하나가 아닐까?
1. 원래 무뚝뚝한 성격인데 사회적 페르소나를 쓴 것
2. 밖의 성격이 내 성격이고 어떤 정신분석적으로 풀어야 할 풀리지 않은 깊은 감정의 골이 나와 부모님 사이에 있는것
지금까지는
1. 무뚝뚝한 성격이 사회적 페르소나를 선택한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2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슨 감정의 골이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동생에 대한 질투인듯 하다.
"왜 쟤는 아무 노력도 안하는데 사랑을 받지?" 하는 의문 말이다.
첫째들은 아마 다 이 생각을 한번씩 하지 않았을까?
둘째에 대한 질투가 커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질투때문에 무뚝뚝해졌다니.
내 자신이 한없이 찌질해 보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원래 이런 찌질이인 것을,
부모 앞에선 평생 응애고 어린이 인거다.
65살 할아버지도 그 어머니한테는 "아가"라는 말을 듣지 않는가?
결론적으로는 아마 부모님이 나의 깊은 질투를 이해해주고 해결해주지 않는 이상은 무뚝뚝함이 지속될것 같다.
한마디로 삐진거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다들 잘 준비했는가?
원래는 여행을 가기로했는데, 이 분위기에 갈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이렇게 집 분위기가 안좋을때는 어서 전처럼 나가서 혼자 살고싶다. (이래서 결혼은 하고 살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한다.)
아, 대한민국에서 딸로 살아가는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이번 냉전은 몇일동안 갈지 모르겠다. 불편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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