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yul 2021. 10. 15. 01:37




나는 그의 소년같은 앳된 얼굴을 떠올렸다.

분명 나이가 나보다 많았음에도 그에게는 알 수 없는 순수함이 얼굴에 있었다.

처음으로 느낀 내 영혼의 친구라는 느낌.

투명하게 나를 봐주는 그에게 나는 마음을 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가끔 공상에 잠기곤 한다.

요즘에는 그와 함게 낮잠에 빠져있는 꿈을 꾼다.

아, 그렇다고 나와 그가 파트너적인 관계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마치 너무 꽉 쥐면 부서질 것 같은 얇은 유리조각처럼 말이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울함은 본인의 마음의 장벽과 관련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누가 봐도 뻔뻔한 사람들은 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의 초자아가 철저하고, 마음의 벽은 얇은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다.


엘리트 코스를 겪어온 나는, 멘탈이 강하고 뭐든 잘 해내는 사람들 속에 있었다.

그들은 완벽했고, 다른삶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잘 난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힘들어 졌을 때도, 그걸 극복하지 못하는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또 힘들기 때문에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때면 자기혐오는 점점 강해져갔다.


내가 그를 만난것은 오래 전 이지만, 영혼으로 만난건 바로 이 때 였다.

나는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전에 그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같이 있어주었다.

뭔가 맛있는 것을 먹자거나, 기분전환을 하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상태에 존재하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봐주었다.




그런 내가 그가 계속 생각이 났다.

우울한만큼 의존성이 강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를 엄격하게 통제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정말 보고 싶어져서 결국 그를 불러냈다.

우리는 또 아무말 없이 걷기만 했다.

나는 또 울적해졌다. 재미있게 못해주는 내 탓인것 같았다.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머리속에서 정리하며 혼자 그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또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잘 걷다가 주저앉은 그는 나에게 조용히 담배 한 개비를 건냈다.

담배 한 개비.

처음 담배를 펴 보는 나에게 잡는법, 꽁초 터는법을 알려주고 나서 그는 조용히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때 느꼈다.

아 이사람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꼈구나, 그리고 우리는 이 상태를 유지해야겠구나.

나는 그와 더 가까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영혼으로 옆에 있어주는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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